- 천년의 옻칠·자개에 새긴 우리 강아지 이름… '팜투어 남원누비GO' 애견 동반 투어

여덟 살 김서연(가명) 양이 쌀알만 한 자개 조각을 핀셋으로 집어 검은 옻칠 목걸이 위에 올리자, 테이블 아래 엎드려 있던 크림색 반려견 콩이가 고개를 들었다.
"콩아, 이따 네 이름표도 만들어 줄게." 아이의 말에 공방 안 어른들이 웃었다.
지난 1일 전북 남원시 이백면 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 공방. 반려견 동반 가족들이 남원에서 보낸 1박 2일 동안 만든 것은 자개를 붙인 옻칠 목걸이 두 점과 강아지 얼굴이 그려진 컵받침, 그리고 우드버닝으로 개 이름을 새긴 나무 이름표였다.
◆ "반려견과 함께 갈 곳도 많지 않지만, 함께 할 프로그램은 더 없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지만 반려견 동반 여행의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남원시농촌종합지원센터 팜투어 남원누비GO의 조수영 농촌관광 코디네이터는 출발점을 이렇게 요약했다.
"반려견 동반 여행의 진짜 어려움은 '갈 곳이 없다'가 아니라, '함께 갈 곳도 적지만, 정작 함께할 프로그램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동반 입장이 되는 숙소는 늘었지만, 반려견과 사람이 함께 주인공이 되는 프로그램은 드물다는 것이다.
남원누비GO는 그 빈자리를 지리산 자락의 농가와 공방, 숙소가 품앗이하듯 나눠 메웠다.
목옻칠목공체험관광협동조합이 체험을, 해발 600m 들꽃다물농장이 저녁 지리산흑돼지 바비큐 팜파티를, 지리산 자락의 순이네흙집 민박과 별헤는밤 펜션 두 곳이 잠자리를 맡아 하나의 1박 2일로 묶었다.
한 농가가 모든 것을 파는 대신 16개 경영체가 하나의 남원누비고 라는 브랜드로 파는 지역단위 농촌관광사업의 구조다.
숙박·체험·식사가 연계된 패키지에는 사업비로 정가의 30%가 지원돼, 참가자는 30% 할인가에 여행하고 경영체는 정가 수익을 가져간다.
소비자에게는 낮아진 문턱이, 농가에는 제값이 돌아가는 구조 — 좋은 농촌관광이 더 멀리 퍼지게 하는 마중물인 셈이다.
◆ 왜 지리산인가 ― 어머니의 산이 개를 품는 방식
남원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른다.
뱀사골·달궁·구룡의 1급수 계곡과 해발 600m 고랭지, 정령치 운해가 차로 30분 반경 안에 모여 있고, 그 위에 춘향전과 동편제 판소리의 이야기가 겹으로 쌓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이 지리산을 고른 이유는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이 반려견에게도 여행지가 되어 주는 땅이라서다.
숙소 두 곳이 그 답을 보여준다.
산내면 중황마을 제일 끝집, 흙과 나무만으로 손수 지은 '지리산순이네흙집'에서는 반려견이 이웃 눈치를 볼 일 없이 산책로와 계곡을 오간다.
이 집에는 와이파이도 TV도 없는 대신 안내견 노릇을 하는 반려견 '초코'가 있다.
손님의 강아지를 마중 나와 산책길을 앞장서는 초코는, 애견 동반 숙소의 차별점이 시설이 아니라 관계에서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다.
뱀사골 어귀의 '별헤는밤펜션'은 1급수 달궁계곡까지 걸어서 3분이다.
개를 태우고 계곡 주차장을 헤맬 필요 없이, 목줄 하나 들고 걸어 내려가면 물가다.
◆ 마른하늘에 물벼락 ― 웃음을 설계하다
한여름 오후의 공방 마당에서는 이 여행의 가장 소란스러운 순간이 벌어진다.
이름부터 장난기 가득한 쿨링 이벤트 '마른하늘에 물벼락, 적셔버러'다. 우비를 입고 의자에 앉으면 머리 위에 시소식 물통이 걸리고, 가족이 던진 공이 표적에 명중하는 순간 물벼락이 쏟아진다.
시원함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우비를 입지 않아도 된다.
운영진은 이 장치를 "기계가 아니라 기다림, 긴장, 폭발, 웃음이라는 감정의 순간을 주는 놀이기구"라고 설명한다.
평소 물벼락을 '맞을 일 없던' 엄마가 아이가 던진 공에 흠뻑 젖는 순간, 관계가 뒤집히는 카타르시스에 마당이 웃음으로 가득 찬다.
예민한 반려견들은 그동안 그늘 쉼터에서 지도사가 따로 돌본다.
해가 기울면 운봉읍 해발 600m의 치유농장 '지리산들꽃다물농장' 느티나무 숲으로 자리를 옮긴다.
뇌혈관질환 수술 후 회복을 위해 정령치에서 내려다본 운봉 들녘에 반해 귀촌했다는 대표가 일군 땅이다.
지리산 흑돼지 삼겹살이 숯불에 오르고, 농장에서 캔 고사리와 삼나물이 함께 상에 오른다.
디저트로 고랭지 감자와 옥수수도 함께 제공된다.
개들은 테이블 곁에 앉는다.
◆ "배변 상담 받으러 여행 왔어요"
프로그램에는 국가공인 반려견지도사 등 자격 7종을 보유한 류재은 행동지도사의 산책 교육과 1대1 행동 상담이 들어 있다.
스스로를 "지도사이기 전에 7마리의 반려견 보호자"라고 소개하는 그는 5kg 소형견부터 30kg 대형견까지, 4개월령부터 12세 노령견까지 키우는 다견 가정의 보호자다.
"다른 개를 무서워하는 아이도 단계를 나눠 접근시키면 두려움을 극복합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개들 사이의 거리 조절이 이번 프로그램에서 제 일이지요."
전주에서 온 박모(41) 씨 가족은 이 상담을 여행의 이유로 꼽았다.
"콩이가 산책 때마다 짖어서 늘 미안하고 궁금했는데, 여행 와서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놀러 와서 숙제까지 해결한 기분이에요." 딸 서연 양의 손에는 콩이의 이름을 우드버닝으로 새긴 나무 이름표가 들려 있었다.
"콩이가 자기 이름 새기는 걸 옆에서 봤어요. 세상에 콩이 거는 이것밖에 없어요." 광주에서 온 이모(38) 씨는 흙집의 밤을 이야기했다.
"TV가 없으니 개랑 마당에 앉아 별만 봤어요. 도시에서는 개를 데리고 어딜 가도 늘 눈치를 봤는데, 여기서는 저 끝집까지 온 마을이 조용히 내버려 두더라고요."
◆ 여행이 끝나도 거실에 남는 것
이 여행의 기념품은 사진만이 아니다.
옻칠 원목에 자개를 붙인 목걸이 두 점, 강아지 얼굴 컵받침, 반려견의 이름표를 만들어 돌아간다.
천년을 가는 전통 공예 기법이 반려견이라는 가장 현대적인 가족 형태와 한 공방 안에서 만난 셈이다.
프로그램은 선착순 8팀, 팀당 2인 이상으로 운영되며 다음 회차 일정과 신청은 남원누비고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돌아가는 차 뒷좌석에는 옻칠자개목걸이 두 점과 컵받침, 그리고 제 이름표를 목에 건 채 잠든 콩이가 나란히 실렸다.
사람들은 지리산을 어머니의 산이라 부른다.
올여름 그 품은, 네 발 달린 식구의 단잠까지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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