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년 기증 역사 조명, 유물과 사람들의 이야기 담은 기증 특별전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은 개관 30주년을 맞아 6월 18일부터 10월 1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기증 특별전 ‘혼자 보긴 아까워서’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경기도박물관 개관 이전인 1986년 경기도향토사료관 시절부터 40년 동안 이어진 기증의 역사를 유물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로 살펴본다. 평상시의 얼굴과 술에 취한 얼굴, 화가 난 얼굴을 각각 담은 조선시대 ‘송준 초상’ 세 점을 비롯해 어머니가 혼수로 가져온 개성반닫이, 어머니의 기억이 담긴 구멍 난 냄비, 사진 한 장을 단서로 다시 수습해 보존 처리한 권우 무덤 출토 복식 등을 선보인다.
전시는 한 점의 유물이 만들어지고 한 가문과 개인의 손을 거쳐 박물관 진열장에 놓이기까지 함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무엇인가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 이를 오랫동안 지키다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들’, 유물을 조사하고 보존해 관람객에게 알리는 ‘박물관 사람들’의 이야기 등 총 3부로 구성했다.
1부. 남긴 사람들
한 사람의 세 가지 표정부터 ‘마지막 자기소개서’까지
옛 사람들은 소중한 순간과 마음을 기억하고 남기기 위해 글과 그림을 그리고, 나무와 도장에도 새겼다. 사진이나 영상이 없던 시절 이렇게 남긴 여러 물건은 누군가의 순간과 마음을 담은 선명한 기록이 됐다. 1부에서는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도착한 선조들의 선명했던 순간들을 헤아려 보는 공간이다.
대표 전시품인 ‘송준 초상’은 조선 중기의 관리이자 학자인 송준(宋駿, 1564~1643)의 초상화 밑그림(초본) 세 점이다. 기록에 따르면 송준이 60세가 된 1623년 평소 모습을 담은 초상을 그린 뒤, 다른 자손들의 요청으로 술에 취한 모습과 화가 난 모습을 추가로 그렸다. 같은 인물의 평소 얼굴, 취한 얼굴, 화난 얼굴을 각각 남긴 사례는 매우 드물다. 후손들이 송준의 다양한 모습을 오래 기억하고자 했던 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이의현(李宜顯, 1669~1745)의 지석도 소개한다. 지석은 일반적으로 고인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글을 짓지만, 이의현은 자신의 집안과 성장 과정, 관직 생활에서 겪은 어려움, 삶의 태도를 직접 기록했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세상 사람들에게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남겼다는 점에서 일종의 ‘마지막 자기소개서’라 할 수 있다.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가 신하 김상용에게 직접 써준 글씨를 새긴 ‘청풍계’ 현판도 전시한다. 선조가 김상용의 집을 위해 써준 글씨를 김상용이 선조 사후 나무판에 새겨 자신의 서재에 걸어둔 것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관계와 그 기억을 보여준다.
2부. 기증한 사람들
어머니의 혼수 반닫이와 버리지 못한 구멍 난 냄비
2부에서는 집안 대대로 전해 온 유물과 가족의 기억이 담긴 생활용품을 박물관에 기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기증은 단순히 물건의 소유권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개인과 가족의 기억을 공동체와 나누는 결정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박애자 기증자는 평생 소중히 간직해 온 유물 376점을 2011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했다. 그중 개성반닫이는 어머니가 1925년 시집올 때 혼수로 가져온 물건이다. 기증자는 어린 시절 반닫이 주변을 돌며 놀았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기증 후에는 어머니의 물건이 있는 경기도박물관이 친정처럼 느껴진다고 전했다. 화려한 장식의 개성반닫이는 한 가족의 생활사와 딸이 간직한 어머니의 기억을 함께 보여준다.
보물로 지정된 ‘허전 초상’에는 유물을 평생 지켜온 기증자의 각별한 마음이 담겨 있다. 초상은 허전을 기리기 위해 경상남도 산청에 세운 이택당 물산영당에 보관되다가 2008년 경기도박물관에 기증됐다. 이후 고령의 기증자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먼 길을 찾아와 진열장에 놓인 초상을 다시 만났다. 기증자는 유리 너머의 초상을 바라보며 눈물을 훔쳤고, 초상을 다시 만나 이제는 여한이 없다는 마음을 전했다. 한 점의 유물을 오랜 시간 지켜온 사람의 책임과 기증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근현대 생활용품인 구멍 난 냄비도 전시한다. 6·25전쟁 중 아버지가 행방불명된 뒤,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가 가족을 위해 밥을 지었던 냄비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기증자가 직접 사용했고, 바닥에 구멍이 날 때까지 간직했다. 어머니의 얼굴조차 희미해진 기증자에게 이 냄비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각별한 물건이었다. 값비싼 유물뿐 아니라 평범한 생활용품도 한 사람의 삶과 기억을 담은 중요한 박물관 자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3부. 박물관 사람들
사진 한 장을 단서로 다시 세상에 나온 조선시대 예복
3부에서는 유물을 조사·연구·보존하며 그 가치를 전시와 교육으로 알리는 박물관 사람들의 활동을 소개한다.
2016년 경기도박물관 연구원들은 묘지석을 보존 처리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던 중, 4년 전 안동권씨 충숙공파 권우(權堣, 1610~1675)의 무덤을 옮길 당시 촬영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사진에는 조선시대 관리가 국가의 큰 행사 때 입었던 최고 예복인 조복이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담겨 있었다. 그러나 사진 속 복식은 이미 새로 조성한 무덤에 다시 묻힌 뒤였다.
박물관은 종중에 복식의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설명했고, 종중은 새로 만든 무덤을 다시 여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중장비 대신 삽으로 흙을 걷어내는 작업 끝에 조복은 4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출토 당시보다 훼손된 상태였지만 박물관의 보존 처리를 거쳐 모습을 되찾았으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본래 색과 무늬를 살린 폐슬과 후수의 재현품도 제작했다.
2013년 기증받은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와 이일 장군 관련 유물에 대한 조사·연구 성과도 소개한다. ‘장양공정토시전부호도’는 조선시대 장군 이일이 여진족 마을을 정벌한 사건을 그린 그림으로, 전투에 참여한 장수 명단에는 이순신과 원균의 이름도 확인된다. 경기도박물관은 이 그림과 2024년 용인이씨 장양공파 종중에서 위탁받은 이일 장군 관련 유물 3점의 문화유산 지정을 추진했으며, 이들 자료는 2025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박본수 경기도박물관장은 “경기도박물관의 기증 역사는 개관 이전부터 시작돼 지난 40년 동안 이어져 왔다”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물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가능한 한 많이 소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어 “기증 유물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에는 ‘혼자 보긴 아까운 마음’이 한 조각씩 자리하고 있다”며 “그 마음들이 유물을 지키고 이야기를 남겨 오늘의 전시로 이어졌다”고 전시 취지를 밝혔다.
전시는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자세한 관람 정보는 경기도박물관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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